글 수 17

눈 쌓인 대륙의 밤에 기차 소리가 적막을 깨뜨린다. 침대 칸 2층에 누운 나는 잠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창 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달빛이 내린 구석구석에서 간간히 나무 한 두 그루가 나타나곤 한다. 난 대륙을 가슴에 안고 베개에 턱을 고인 채 21세기를 꿈꾸었다. 다시 오리라고...
반복되는 싱거운 하루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기억은 냄새를 맡을 수록 생생해진다. 찬 바람 씽씽 부는 날 거리에 서면 겨울 냄새에 기억도 실려온다. 回想이 쓸데없는 감상주의로 치닫지 않는 까닭은 그 기억이 오늘과 내일 그리고 21세기를 향한 꿈이 되기 때문이다.
꿈을 키워간다는 것은, 비전을 구체화한다는 것. 나와는 아무 상관없던 그 나라가 관심의 대상이 되더니, 가고 싶었고, 보았고, 약속하고 다시 갈 곳이 되어버렸다. 한 두번 만나다 보면 정들고 자꾸 만나고 헤어지기 싫어질쯤 되면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남녀 간의 사랑처럼, 나는 꿈을 꾸다가 깨고, 다시 똑같은 꿈을 꾸다가 매일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결코 인생이 평탄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20대에 세운 꿈은 20대에 이룰 것이고, 30대에는 또 다른 인생을 살 것이다. 또다시 고민하고 도전해 나갈 것이다. 40대에 안정을 찾지 않을 것이고, 50대에 여유를 부리지 않고, 60대에 인생을 회고하지 않을 것이다. 20대에 접어든 어느날 "20대 창업, 60대 창업"이라는 비전을 품은 적이 있다. 그 꿈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요즘은 핸디가 벤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을 보며 느끼며, 내 인생에 적용해 보고 있다.
20대에 중국을 보았다. 내가 다가가기엔 엄청나게 크고, 작은 한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 그 때문에 더 큰 호기심이 생겼고, 알아갈 수록 모르는게 많이 생겼다. 공산당 집권후 대약진과 문화 대혁명, 그리고 천안문 사건 이후…...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사를 겪은 사람들과 그 알수 없는 표정을 보며 난 꿈을 꾸었다. 막연하던 꿈이 어느새 삶 속에 큰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장춘의 추운 겨울날 우연히 만났던 두 친구가 있다. 요즘도 전자우편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친구는 한국말을 모르고 나는 중국말을 모른다. 지금으로선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첫째 이유가 그 친구 때문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짧은 영어로는 답답할 뿐이니까. 그 애의 생각과 감정은 늘 내게 중국을 말해 준다. 내 꿈을 키워준다.
21세기에 나는 중국에서 뛰고 있겠지만, 아직은 희미한 모습이다. 한 두개의 봉우리를 넘었을 뿐이니까. 어쩌면 핸디소프트같은 벤처기업을 이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보따리를 짊어지고 장사를 할지도 모르겠고... 중요한 것은 꿈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핸디가 벤처정신으로 빠르게 자라났고,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다. 옥토에 뿌려진 씨앗처럼 내 젊은 날이 이곳 핸디에 놓여있다.
-- 핸디소프트 웹진 99년 1월호에 실은 내용입니다. --
PS) 저는 2000년 12월 다시 그 기차에 타고 옛날을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올 수 있었지요. 그리고 또다시 오기를 거듭 다짐했답니다. 제 꿈은 이 땅에 있음을 확신했고요.